양자컴퓨터의 첫 암호화폐 피해자는 해킹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

양자컴퓨터의 첫 암호화폐 피해자는 해킹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
충분히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등장해 주요 블록체인에서 사용하는 암호체계를 무너뜨릴 경우, 암호화폐 시장에서 처음 나타나는 이상 징후는 명확한 해킹 흔적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지갑 자금 이동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블록체인 기업 Quantus Network의 공동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Christopher Smith는 양자컴퓨터가 암호화폐 보안을 실제로 돌파했다는 신호가 연속적인 지갑 탈취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래소 서버가 침해되거나 이용자의 기기가 악성코드에 감염된 흔적이 없는데도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지갑에서 갑자기 자금이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시장은 자금이 이동한 이후에야 기존 암호체계가 이미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양자컴퓨팅 위험은 특정 블록체인 하나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Quantus는 전체 암호화폐 시장의 99.96%, 약 2조3,000억 달러 규모의 디지털 자산이 충분히 강력한 양자컴퓨터에 취약한 암호기술에 의존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회사가 2026년 5월 발표한 State of Quantum Report에서는 암호화폐 업계가 양자내성 체계로 전환할 준비를 본격화해야 하는 시점이 2020년대 후반과 2030년대 초반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Bitcoin과 Ethereum, Solana를 비롯한 주요 네트워크 역시 현재 양자 공격에 취약할 수 있는 디지털 서명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7월 공개된 조사에서도 시가총액 상위 20개 블록체인 가운데 포스트양자 서명 알고리즘을 완전히 도입한 네트워크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침해 흔적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단서가 될 수 있다
양자 공격자는 반드시 암호화폐 거래소의 서버를 침입하거나 이용자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해킹할 필요가 없다.
충분한 성능을 갖춘 양자컴퓨터가 있다면 블록체인에 이미 공개된 공개키를 이용해 대응하는 개인키를 계산하고, 해당 개인키를 이용해 정상적인 소유자인 것처럼 거래에 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블록체인에서 확인되는 거래 자체는 정상적인 개인키로 서명된 거래처럼 보일 수 있다.
Smith는 누군가 개인키를 해독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키를 알아냈는지를 알려주는 별도의 신호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보안 체계가 제대로 갖춰진 조직이라면 오히려 시스템 내부에서 침입이나 악성코드, 계정 탈취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것이 유일한 포렌식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거래소의 내부 시스템과 직원 계정, 서버가 모두 정상인데 암호화폐가 정상적인 서명을 통해 외부로 전송됐다면 기존 공개키 암호체계 자체가 공격당했을 가능성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Blockchain Capital의 보안 연구자 Sean Cheetham은 실제 공격자가 처음부터 사토시 나카모토의 장기 휴면 비트코인을 노리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대신 거래가 자주 발생하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핫월렛이 초기 공격 대상으로 더 매력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거래소 핫월렛에서는 평소에도 대규모 입출금이 반복되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거래가 발생하더라도 즉시 양자 공격으로 인식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공격자는 비교적 작은 규모로 자산을 이동시키면서 보안 시스템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한 뒤 공격 범위를 확대할 수도 있다.
Google, 양자 공격에 필요한 자원 추정치 크게 낮춰
양자컴퓨터의 위협이 당장 현실화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이러한 공격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자 공격에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는 컴퓨팅 자원은 이전보다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Google 연구진은 2026년 3월 암호화폐에서 널리 이용되는 256비트 타원곡선 암호를 양자컴퓨터로 공격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새롭게 계산했다.
연구진은 특정한 하드웨어 성능과 오류수정 조건을 가정할 경우 50만 개 미만의 물리적 큐비트로 몇 분 안에 ECDLP-256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는 이전에 필요하다고 예상됐던 물리적 큐비트 수보다 약 20분의 1 수준이다.
Google은 이 결과를 근거로 실제 공격이 가능한 양자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에 블록체인이 포스트양자암호로 전환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사토시의 비트코인보다 Tether 발행키가 더 큰 문제가 될 가능성
‘Q-Day’에 대한 논의는 주로 사토시 나카모토가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비트코인에 집중돼 왔다.
Q-Day는 현재 사용되는 공개키 암호기술을 실제로 깨뜨릴 정도로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는 시점을 의미한다.
사토시와 연관된 비트코인의 가치는 약 630억 달러로 추정된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비트코인 가운데 공개키가 노출된 물량이 양자 공격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 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Smith는 더 큰 위험이 Tether의 USDT 발행과 관련된 개인키에서 발생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Tether의 핵심 발행키가 공격자에게 넘어간다면 정상적인 권한을 가진 것처럼 USDT를 부정하게 생성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Tether 역시 USDT 발행 권한을 제어하는 개인키의 보안을 핵심적인 문제로 다뤄 왔다. 발행 과정에서는 개인키 사용 빈도를 줄이기 위해 미리 승인된 토큰을 준비하고 여러 서명자가 거래에 참여하는 방식 등이 이용된다.
Smith의 시나리오처럼 핵심 발행 권한 자체가 양자 공격에 의해 무너지면 문제는 단순한 지갑 탈취를 넘어 스테이블코인의 신뢰와 시장 유동성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3,000억 달러 규모 스테이블코인 시장으로 확산될 가능성
이러한 위험은 Tether 한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원문 기준으로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약 3,007억 달러이며, 이 가운데 USDT는 약 1,831억 달러로 전체 시장의 60.9%를 차지한다.
대형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거래소의 거래쌍과 탈중앙화금융, 대출, 결제, 파생상품의 담보 등 여러 분야에서 유동성의 중심 역할을 한다.
따라서 주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토큰을 직접 보유한 이용자뿐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거래소와 디파이 프로토콜에도 충격이 전달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과 전통 금융시장의 연결도 커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2025년 12월 기준 2,70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보유했으며, 2025년 한 해 동안 약 350억 달러 규모의 미국 단기 국채를 매입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보유한 준비자산이 미국 국채시장과 점점 더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스테이블코인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혼란이 암호화폐 시장 밖으로 영향을 확산시킬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금융시장이 이미 불안한 상황에서 대형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신뢰 문제가 발생한다면 유동성 충격의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자 공격 가능 시점은 계속 앞당겨지고 있다
현재 존재하는 양자컴퓨터 가운데 Bitcoin이나 Ethereum의 디지털 서명을 실제로 깨뜨릴 수 있는 장비는 없다. 여전히 상당한 기술적 격차가 남아 있다.
다만 양자컴퓨터가 암호체계를 공격할 수 있는 시점에 대한 예상 범위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2026년 6월 발표된 Quantum Horizon 보고서는 암호학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의 양자컴퓨터가 2035년까지 등장할 확률을 약 6분의 1로 추산했다.
2040년까지 등장할 확률은 약 30%, 2050년까지는 약 60%로 계산했다. 연구진은 이 수치가 실제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술 발전 가능성을 반영한 확률적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포스트양자암호로의 전환을 계속 미룰 수만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Google 역시 양자 하드웨어와 오류수정 기술, 암호 해독에 필요한 자원 추정치의 변화 등을 반영해 자체 시스템의 포스트양자암호 전환 목표를 2029년으로 설정했다.
블록체인은 일반 시스템보다 전환이 어렵다
암호화폐 네트워크의 포스트양자 전환은 중앙화된 기업 시스템보다 훨씬 복잡하다.
블록체인은 공개돼 있고 세계 곳곳의 독립적인 참여자가 운영하며, 프로토콜 변경을 위해 개발자와 검증자, 채굴자, 지갑 업체, 거래소와 이용자 사이의 광범위한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기업이 내부 서버의 암호 알고리즘을 변경하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시스템을 업데이트하기 어렵다.
기술적인 부담도 존재한다.
기존 ECDSA 서명은 비교적 작은 데이터만 필요하지만 포스트양자 서명 알고리즘은 훨씬 큰 크기의 데이터를 요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ECDSA 서명은 약 64바이트 수준인 반면 Dilithium-5 서명은 약 4,595바이트에 달한다.
이를 블록체인 거래에 그대로 적용하면 거래 하나가 차지하는 데이터 용량이 크게 늘어나고, 노드가 저장해야 하는 블록체인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통해 전송해야 하는 데이터도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블록 공간 사용량과 저장공간, 대역폭, 거래 처리비용이 함께 늘어날 수 있다.
실제 위협은 ‘Q-Day 발표’보다 먼저 나타날 수 있다
암호화폐 업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양자컴퓨터가 Bitcoin이나 Ethereum을 깨뜨렸다는 명확한 발표가 나오는 날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주요 지갑이나 거래소, 스테이블코인 운영자의 주소에서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거래가 나타나는 순간이 최초의 경고가 될 가능성이 있다.
서버 침입도 없고 내부 직원 계정이 탈취된 흔적도 없으며 개인키가 유출됐다는 증거도 없는데 정상적인 디지털 서명이 포함된 거래가 발생한다면 기존 암호학적 가정 자체가 이미 무너졌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 시점에는 공격자가 이미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공개키에서 개인키를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암호화폐 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양자 공격이 실제로 확인된 이후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현재 사용되는 서명체계를 포스트양자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첫 번째 양자 공격 피해자는 자신이 어떻게 해킹됐는지를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한동안 해킹당했다는 사실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이번 논의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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